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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거부 vs 구독해지: 뉴스레터의 UX writing (2021.06.01)

*다음 내용은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 73호에 발행 되었습니다.
자못 진지하게 제목에 마침표까지 붙어 있는 “사용자를 바보로 만들지 마세요.” 라는 글을 빨려들어가듯 읽었다. UX 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joo jun님의 표현에 따르면, 이 글은 UX writing 개노답 삼 형제 중 가장 문제적인 인물인 ‘컨펌 쉐이밍’에 관하여 쓰였다. 이를테면, 이 글이 게재된 브런치 페이지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저작권 보호를 위해 브런치 작가 본인만 글을 복사할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확인]”이라는 팝업이 뜨면서 복사를 할 수 없게 해두었다. 여기서 [확인]이라는 버튼에 [확인]을 쓸 것인지 아니면 [예, 너른 양해를 할게요!]라고 쓸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것이 UX writing의 영역이다.
회원가입, 앱 설치, 쿠폰 발급 등의 행동을 유도하는 텍스트라고 한다면, 손쉽게 자신이 플랫폼이 되어버리는 요즘 사람들일지라도 크게 속할 일 없는 글쓰기의 방식 같다. 그러나, 독자가 이 글의 주변에 계속 머무르게 할 것인지, 복사를 쉽게 할 수 없대도 부정적인 경험 없이 계속 이 플랫폼에 찾아오게 만들 것인지 등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뉴스레터 발행인의 입장에서는 눈여겨 볼 문제가 된다. ‘컨펌 쉐이밍’은 (어렵게 들리는 말이지만 짧게 말해) 어떤 서비스의 이용자가 ‘얘네가 누르라는 버튼을 클릭하지 않고 다른 걸 눌러버리면 정말 나는 바보가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며, 그들의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하도록 의도된 일이다.
2021년 2월부터 나는 뉴스레터 하단에 ‘이번호까지만 읽고 해지하기'라는 항목을 넣어 두었다. 발행 2년을 채우기 꼭 한 달전에야 확정된 카피다. 그동안 매 번 수신거부 링크를 넣으면서도 몇 가지 변화를 주었는데, 내가 고민했던 것은 다음 두가지였다.
1.
‘수신거부' 링크를 뉴스레터 내 어디에 놓을 것인가 (position)
2.
‘수신거부'를 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에게 어떤 마지막 인상을 안겨줄 것인가 (writing)
먼저, 나는 ‘뉴스레터 구독자’라는 보이지 않는 얼굴을 내멋대로 느긋한 구석이 있는 캐릭터로 설정해두는 편이다. 이들은 재미가 없거나, 더이상 유용하게 느껴지지 않거나, 오늘의 투 두 리스트는 딴 짓하지 말고 밀린 뉴스레터만 읽기라는 다짐이 반복 될 경우, ‘이 뉴스레터를 이제 그만 받아보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행동하는 대신 앞으로 몇 번 더 받아보고 결정 하기로 하는 것이다. 당장 해지하는 대신 다음에 해지하기로 유예하는 것이다.
그래서, 2020년 11월의 나는 그동안 뉴스레터의 가장 하단에 있던(footer) 수신거부 링크를 가장 상단(header)으로 옮겨보았다. 왜냐하면, 이미 직전까지 이 뉴스레터를 그만 받아보기로 마음을 먹어왔던 사람들이라면 새로운 호를 클릭하자마자 더는 읽어보지도 않고 수신거부할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컵에 물이 가득 담겨있는데 딱 한 방울이 더 떨어져서 물이 온통 흘러넘치게 되는 상황과도 비슷하다. 여기서 한 방울이란 ‘오늘 나의 받은편지함으로 날아 온 뉴스레터 한 통'이 되는 셈이다. 나의 기조는 콘텐츠의 형식과 분량 뿐 아니라 처음 만난 시간부터 헤어지는 시간까지 구독자의 시간을 아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마음을 확정한 사람들은 스크롤을 전체 본문의 절반도 채 내리지 않거나 아예 내리지 않는 패턴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럴거면, 수신거부를 빨리 해주게 도와주자.
그러자 어떤 사람들이 수신거부 링크를 찾기 힘들어했다. 맨 위에 분명히 있는데, 왜 수신거부 링크가 없느냐는 문의를 받았다. 그것이 응당 있어야 했던 위치, 즉 구독자의 관성을 깨버리려고 했던 꼴이 되었다. 수신거부 링크가 분명히 있는데 그걸 찾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더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여타 뉴스레터와 같은 문법을 따라, 최하단(footer)으로 그것을 돌려놓기로 했다.
위치보다 중요한 건 두 번째인데, ‘수신거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어떤 마지막 인상을 안겨줄 것인가였다. 발행인 입장에서는 어떤 표현을 쓸 것인가 라는 문제다. 이미 마음을 먹은 사람을 회유하려는 방향이 되면 골치가 아프다. 어떤 서비스와 플랫폼은 단 한명의 이탈자를 막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탈퇴와 해지를 어렵게 만들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만큼은 주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어려운 경험들을 거듭 하면서 나부터 어떤 서비스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가지게 된 소비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보내던 뉴스레터에는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플랫폼 특성 상 고객 중 해외권 고객들도 다수 있기 때문에 영문을 함께 표기한다.)
“이 메일은 2021년 06월 01일을 기준으로 이벤트/추천 알림 수신에 동의한 OOO 가입자와 구독자에게만 보내드렸습니다. OOO은 메일과 앱 푸시를 통해 업데이트, 팁 등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더 이상 이 메일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수신거부] 버튼을 눌러주세요.”
뉴스레터 담당자였던 나는 일단 이 안내문구가 지나치게 길다고 생각했고, 구독자의 관점에서 유하게 다듬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다소 보험사 약관처럼 보이더라도 필요한 정보를 명확하게 표기하지 않을 시에는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는 내부 피드백을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구독자 입장에 서본다고 해서 무조건 간단 명료하게 금방 읽히는 문장만 써야하는 건 아니고, 각종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명확하게 안내를 하고 고객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였다. 그게 아무 기준 없이 통용되는 글쓰기 방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전 회사가 발행하는 뉴스레터 하단에 어떤 문구들이 적히기 전에는, 그곳에서 회원들 대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이용약관이 선행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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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콘텐츠로그는 영리 목적으로 발행되는 뉴스레터가 아니었고, 기능적인 면을 제시하되 보다 더 구독자(였던 분들)에게 좋은 마지막 인상을 주는 방향을 고안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해외 국적의 구독자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내 뉴스레터의 대상독자는 아주 높은 비율로 한국어 기반의 생활을 하는 독자를 향하고 있으니 영어를 쓸 필요는 없었다. (물론, 한국어 공부를 위한 목적으로 콘텐츠로그를 구독한다는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unsubscribe라는 단어는 빼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수신거부’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내가 불편해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건 마치 “거절 당할까 싶은 두려움에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 해"라는 청춘 드라마의 대사들, 또는 K-발라드 가사들이 이전부터 종종 이해되지 않았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거부'나 ‘거절'은 우리 인생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이지 않은가? 개인이 ‘수신거부'라는 단어를 즐겨쓰지 않는 취향이 어떻게 이용자 경험과 연결이 된다는 말인가?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기로 했다.
거부(拒否): 요구나 제약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침
이 표현을 쓰면 내가 제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십사 예비 구독자들에게 요구를 한 것만 같다. 그러나 구독자들은 이 뉴스레터와 자발적으로 관계를 시작하는 편에 더 가깝다.
해지(解止): 계약 당사자 한쪽의 의사 표시에 의하여 계약에 기초한 법률관계를 말소하는 것
물론 ‘해지’는 법률적 용어다. 이 표현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셀럽이 물의를 일으켰을 때 기획사로부터 ‘전속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 경우다.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상황은 아니겠지만, 단어의 의미에서 계약이라는 단어를 ‘약속’이라고 바꾸면 적절하게 적용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발행인-구독자의 약속 중 당사자 한쪽의 의사 표시에 의하여 약속에 기초한 구독관계를 그만두는 것.’ 대충 이렇게 정의하기로 하는데, 포인트는 상호적인 관계로 약속(정해진 일자에 여러분의 받은편지함으로 발행이 됩니다)을 하고 있는 것, 그러다 구독해지를 결정하게 되면 더이상은 상호성을 주고 받지 않는 것을 담아낼 수 있는 단어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해지'라는 단어를 넣은 ‘이번 호까지만 읽고 해지하기’라는 표현이 나왔다. 이를, 구독자 민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해주었다. 본문 내용이나 구성에 대한 피드백이 아닌, 이용자 경험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서 뜻깊었다.
POINT 3. 구독 해지 멘트를 뉴스레터 성격에 맞게 구성한다 “인상적이었던 포인트였어요. 보통 다른 뉴스레터들은, 거의 안 보이는 곳에 (심지어 해지 버튼이 없어서 메일 주소를 차단해야만 했던 곳도 있었...) 해지/unsubscribe을 두는데요. '이번 호까지만 읽고 해지하기' 라고 넣어두셨더라고요! 정말 센스가 어마무시하다고 생각했어요. 왜, 신문이나 잡지 볼때도 잠깐 해지했다가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잖아요? 그런 감성을 잘 살려주신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 뉴스레터 구독 취소 포인트 총 정리
이런 분석을 보고나서야 역으로 알게 된 건, OTT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재결제를 앞두고 해지를 선택하는 것이 영원한 해지는 아님을 뜻하는 나의 소비 습성이 이 표현에 담겨버리게 된 것이구나 하는 점이었다. 나는 영원히 안녕을 고할만큼 특정 서비스를 미워한 적이 없고, 그 달의 해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담겨있다. 다른 뉴스레터들도 간헐적으로 해지하고 때에 따라 재구독을 하기도 한다. 이번 호까지만 읽고 해지했지만, 언젠가 다음 호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바람을 담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호까지만 읽고 해지하기'는 효과가 있었을까? 2021년 2월부터 뉴스레터 해지 링크 안내에 이 문구를 적용한 후, 구독자 해지 비율이 미세한 비율로 더 늘었다. (물론 해당 시점 이후로 구독자가 느는 비율과 구독해지자가 느는 비율이 합작하여 증가하고 있다.) 모쪼록 이번 호까지만 읽고 해지하신 분들, 반가웠습니다! (2021/06/01)
부록
사실 나는 푸터를 정말 많이 바꿨다. 정말정말 조금씩 많이 바꾸었다.
4호: 구독신청 & 수신거부로 심플하게 안내되어 있다.
33호: '아무래도 수신거부 할래요'가 되었다. 이 때 골랐던 부사에는 어쩐지 구독자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던 흔적이 묻어나는데 정말 역대 푸터 중 가장 웃기다...
43호: '수신거부'라는 단어를 '구독해지'로 바꾸어서 적용했다. 웹페이지로 보기는 '오늘의 레터를 공유 할래요!' 라는 문구로 풀었다. 이미 진작부터 뉴스레터를 뭐라고 읽어야 할 지, 뭐라고 소개해야 할 지 모르는 분들이 보여서 '#콘텐츠뉴스레터 라고 소개해주세요.' 라는 안내를 덧붙였다.
58호: 푸터에 있던 '구독해지'가 맨 위 헤더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번에는 '해지하기'가 되었다. UX writing 얘기만 하고 싶지만 역시 지난 이력들을 보다보니 이런저런 것들이 함께 딸려 나온다. 디자인 과도기였고, 길벗체로 메인 이미지를 쓰고 있던 시기.
68호: 그리고 현재 버전! '이번 호까지만 읽고 해지하기'라고 확정된 건 2021년 2월이지만, 뉴스레터 이미지를 전반적으로 손보는 작업을 하면서 푸터에 귀여운 나도 있어 고양이를 함께 적용시키게 된 건 68호(2021년 4월)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