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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가머스 <레슨 인 케미스트리>

선곡한 음악
게스트
with <뉴그라운드> 신지혜 공동 대표
에피소드 업로드일
2022/08/30
ㅎㅇ 두 가지 파트로 나누어 주인공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화학자로서의 엘리자베스는 캘빈과의 첫 만남에서 잘 드러나죠. 업계에서 잘 나가는 남성 화학자 캘빈이 이런 말을 해요. “지금 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서요.” 내가 지금 너무 바쁘니까 말 걸지 말라는 거에요. 거기서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말하죠. “우연의 일치네요. 저도 중요한 일을 한답니다.”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이렇게 정리하는 데에서 많은 게 드러나죠. 이어서 “여성 과학자를 몇 명이나 알고 있어요? 퀴리부인 빼고요.”라는 질문에 캘빈이 대답을 못 해요. 자신은 평소에 여성 과학자를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서, 정작 자신이 이름을 아는 여성 과학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이 대화를 통해 캘빈이 살짝 각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미권에서 결혼한 여성의 경우, 자신의 성(last name)이 사라지고 남편의 성을 따르게 되는데 그게 모든 공식 문서에 기재 되잖아요.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하죠. 앞으로 자신이 화학자로서 하는 모든 일이 드러나지 않을 방법을 피하기 위해서요. 다음으로는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의 엘리자베스인데요. 어쩌다 진행자로 발탁이 됐던 거죠? 지혜  초반부에, 엘리자베스가 딸 ‘매들린'의 영양상태를 의심하는 장면이 있어요. 정확한 화학적인 지식에 기반해서 저 나이대에 딱 맞는 영양소를 충족시키는 도시락을 정성껏 싸줬는데, 딸이 그만큼 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런 식으로 문제를 알아차리는 것도 정말 과학자다운 전개였습니다. 알고 보니, 매들린의 유치원 친구가 계속 도시락을 뺏어 먹었던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소위 도시락 도둑의 학부모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그가 방송국 PD ‘윌터'였죠. ㅎㅇ  윌터는 오후 4시 30분이라는 애매한 시간대에 신규 프로그램으로 한 방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러다 알게 된 엘리자베스를 향해, 요리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게 되고요. 엘리자베스는 첫방부터 전문적인 화학 용어들을 많이 언급하죠. PD와 방송국 사람들은 ‘완전 망했다, 노잼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웬걸 전국의 여성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거예요. 보면 볼수록 유능해진다는 기분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시청자가 있죠. 지혜  실제로 엘리자베스는 요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 점에 대해 진행자로서 진지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이 느끼는 대로 얘기해요. 요리하는 여성들은 알 거잖아요. 직업적인 요리사가 아니더라도 한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맛있고 영양소가 충분한 걸 제공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요. 그러니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사회에서는 여성의 가사 노동을 중요하게 인정해주지 않지만, 엘리자베스는 그걸 인정해 준 사람이니까요. 기존 TV쇼 진행자와 아주 다른 분위기였더라도요. 이 책을 읽으면서 엘리자베스가 엘리자베스답게 계속 얘기하고 행동하고 선택하는 모든 게 좋았어요. 아무도 나를 전문성이 있는 사람으로 봐주지 않는데도 자신에 대해 확신하는 여성이 좌절하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해나가는 게 현재 2022년을 사는 저에게도 힘이 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