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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선곡한 음악
게스트
with 유정미 기획자
에피소드 업로드일
2022/09/13
ㅎㅇ 일단 '농담'이라는 키워드가 제목에 들어가 있으니, '조금 유머러스한 이야기인가?' 라는 첫인상이 생기게 되는데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가 스스로가 재미있게 읽었다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관한 자신감일 수도 있을테고요. 아니면, 남이 어떻게 읽어주는지는 크게 상관 없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정지돈 작가가 "작가의 첫 번째 독자는 자기자신이다"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느정도는 내가 나를 위해서 쓰는 측면이 있다라는 걸로 이해 했어요. *책읽아웃 '오은의 옹기종기: 소설가 정지돈 “다른 방식의 산책과 위로”' (2021.10.28)
정미 정지돈 작가의 책을 보면 힙합의 '샤라웃(shout out)' 같은 지점이 있어요. 정지돈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 언급하거나, 작품 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다른 작가 분들이 다수 계신데요. 박솔미 작가, 오한기 작가, 이상우 작가, 금정연 서평가, 강동호 평론가 등등이요. 저는 그분들의 책이 출간되면 읽든 읽지 않든 사거나, 그도 아니면 도서관에서라도 일단 빌려보는 편이에요. 제가 그분들의 책을 자꾸 읽으려는 건, 그것들이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닮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2015년에 정지돈 작가를 포함해 위에서 언급된 작가·서평가·평론가 분들이 《후장 사실주의》라는 이름의 잡지를 만든 적이 있어요. 이게 대체 무슨 제목인가 싶잖아요? 이 잡지에는 너무나 많은 영화라든가, 책이라든가, 음악이라든가, 철학자의 이론 같은 것들이 계속 인용 되어 있어요. 그와중에 현실의 인물과 사건을 그 사이사이에 녹여 내면서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고요.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거야? 아니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창작이야?'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그런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 자체를 연구하는 데에 집중하는 논문과도 같아요. 정지돈 작가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패턴주의자'로 표현한 적이 있어요. 마치 퀼트를 하듯이 인용을 통해 새로운 맥락을 만드는 거죠. (이 표현은, 저자의 또 다른 책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2019, 워크룸프레스)에도 나오고요.) ㅎㅇ 정지돈 작가께서 인터뷰를 많이 해주신 점이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유용한 가이드가 되어주고 있어요. 정미 이런 책들을 볼 때 독자로서는 하이퍼링크 식의 읽기를 하게 되는데요. 각주와 참고 문헌을 하나하나 따라서 읽는다거나, 본문 속에 나열된 대명사들을 면밀히 따라가보지 않더라도 그런 것들을 보고 있다보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 속에서 여전히 조용히 책을 펼쳐서 조용히 덮는 식으로 독서를 하고 싶기도 하고요. ㅎㅇ 저 역시 그 지점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세부 정보를 찾아보거나 맥락을 온전히 파악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흥미롭다는 점에서요. 제가 개인적으로 하는 작업들도 자체 발생된 한 덩어리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주변의 것들을 자꾸 끌어오는 식인데요. 제가 그런 방식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인용을 잘 하는 작가들을 볼 때 감탄스러운 부분도 있고요. 정미 저는 명사에 대한 수집욕이 있어요. 생각해보면, 왜 이 분들은 서로서로를 이렇게까지 호명을 하는가? ‘정연 씨를 만났는데’ ‘지돈 씨를 만났는데’ ‘한기 씨를 만났는데’ 뭐 이런 것들이 계속 나오잖아요.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흘러가는 명사들을 보는 게 즐거워서 계속 정지돈 작가의 책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ㅎㅇ 지금 말씀하신 것들이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만 한정되는 감상은 아니겠네요. 대체적으로 정지돈 작가의 책을 읽기 전에 그런 식의 마음가짐을 먹게 되신다는 거죠. 일단, 저는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두가지 생각을 했는데요. 첫 번째는, '어떡하지?' 였어요. 대체 이 소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지? 18편의 소설이 하나의 메시지를 관통한다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무리해서 엮는 시도는 좋지 않겠다 싶었고요. 두 번째는, 웃음소리를 예로 들어서 ‘하하하’와 ‘호호호’와 ‘낄낄낄’이 있다고 할 때 그들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그 웃음소리들 중 어디에 가장 가까울까? 라는 점이었어요. 정미 약간 소리 나지 않는 웃음 아닌가요? ㅎㅇ 맞아요. 세상에 없는 웃음소리 같아요. 정미 그렇다고 뭔가 만면의 미소 이런 건 절대 아니죠! 저는 농담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농담 싫어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 책에 [이 작품은 허구이며 사실과 유사한 지명이나 상황은 우연의 일치임을 밝힌다]라는 제목을 가진 단편 소설이 실려 있어요. 제목이 이것입니다. 이건 마치 드라마나 영화가 끝나면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라는 문장이 뜨는 것과 같죠. 저는 이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할 수 있는 주제 또는 컨셉이 아닐까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