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 플레이>에서 두 사람이 대비되는 캐릭터라는 게 가장 먼저 드러나는 건, 마리의 작업실 벽면에 걸려있는 회화 작품들을 보고 욘나가 전면 재배치를 하려고 하는 장면에서에요. 욘나가 또 이런 말을 하죠. "물론 그 벽은 앞으로도 정확하게 대칭이어야 해."(p.17) 한 치의 오차 없음이 중요하고, 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걸 자기의 안목대로 통제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말 같아요.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곡은 수민, slom의 '일단은'이예요. 다음 가사를 비롯해서, 욘나와 마리가 작품 초반부터 주고받는 대화의 리듬감과 이 곡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랑 나 춥지도 덥지도 않아 너랑 나 이제 지겹지도 않아 수수께끼 같아 우리 사이 상태" -수민, slom '일단은'
프로듀서인 slom을 만나기 전부터 수민은 싱어송라이터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네오 케이팝'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는 아티스트였어요. 아이유 '에필로그', 방탄소년단 지민 솔로곡 'lie'를 비롯해 수년간 케이팝 작업을 해왔고요. 그런데, 자신이 이미 다양한 음악을 잘 만들거나 부를 수 있는 사람인데도 신뢰할 만한 다른 프로듀서랑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신뢰할 만한 사람이 slom이었던 거고요. 그래서 이 'MINISERIES'(2020)는 두 사람이 합작하여 만든 앨범입니다. slom-수민이 서로 신뢰할 만한 창작 동료이자 수수께끼 같은 관계라는 점 역시, 욘나-마리의 관계와 비슷하게 느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