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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선곡한 음악
게스트
with 에디터리
에피소드 업로드일
2022/04/26
박서련 <마법소녀 은퇴합니다>(2022, 창비)
ㅡ 진행. ㅎㅇ 10일에 한 번씩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보내고, 격주로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말한다. ㅡ 초대손님. 에디터리 호기심과 좋아하는 것이 많고 언제든지 쉽게 반할 준비가 되어 있는 편집자. 격주로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편집자 인터뷰 코너를 진행한다.
ㅎㅇ 혹시 '곽재식 속도'라는 고유명사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곽재식 작가가 6개월에 단편소설 4개를 발표하는 주기를 꾸준히 유지 한다는 데에서 비롯된 말인데요. 작가의 글쓰기 속도를 측정하는 단위로 쓰인다는 우스갯 소리입니다. 에디터리 출판계에는 '월간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말이 있어요. 실은 여러 사람이 팀으로 집필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에요. 문득 돌아서면 신간이 나오는 김초엽 작가도 떠오르네요. ㅎㅇ 우리가 빛의 속도로 책을 살 수 없다면…. 에디터리 함부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 ㅎㅇ 오프닝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쩐지 올 해 계속 온라인 서점의 신간 리스트에서 마주하게 됐던 이름이 있기 때문이에요. 바로 박서련 작가입니다. 2020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한 달에 한 번 꼴로 박서련 작가의 신작(공저 포함)이 출간 되어요. 오늘은 그 중에서도 4월에 갓 출간 된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창비, 2022)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마법소녀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박서련 작가의 최근 집필 활동 중 <소설가가 입사했다> 프로젝트를 꼭 소개하고 싶어요. 배달의 민족을 만드는 '우아한형제들'의 의뢰를 받아 작가가 직접 회사에서 (대면, 비대면을 포함해) 일하고 난 뒤 다섯 편의 에세이를 연재한 프로젝트입니다. 에디터리 기업이 소설가에게 취재 요청을 한 게 무척 신선했어요.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조직 문화를 재미있게 바라보고 더불어 즐겨주실만한 분이라는 점에서 섭외를 하게 된 게 아니었을까요. 결이 조금 다르지만, <한겨레21> 기자가 <뉴닉>에서 단기 근무한 기록을 담은 <뉴닉 인턴기> 시리즈도 있었죠. 기성 미디어에서 MZ 세대 미디어의 운영 방식을 경험하고 전달하는 기획이었습니다. ㅎㅇ 저는 먼저 목차에 감탄했다는 감상을 전하고 싶어요. 책을 펼쳐보면 전부 '마법소녀'라는 단어가 포함되는 데다가, 라임이 9글자로 딱딱 맞는 목차를 마주하게 되는데요. '아니 이런 멋진 컨셉이 있나?' 하는 첫인상을 갖게 됐어요. 에디터리 '스위치'(창비 온라인 연재 플랫폼)에서 사전 연재 될 때는 목차가 조금 달랐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의 담당편집자님께 사내 메신저를 통해 질문을 드려봤습니다. "연재 시 목차는 90년대에 방영 된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가사들이었습니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처럼 너무 유명한 '세일러문'의 한 소절도 있었고, '요랑아 요랑아'처럼 제가 잘 모르는 애니메이션 주제가도 있었어요. 그런데, 짧게라도 노래가사를 포함한 책을 출간하려면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목차로 실린 14곡 중 3곡 정도가 아무리 찾아봐도 저작권자가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작가님께 다시 써주실 것을 요청 드렸는데 후다닥 라임까지 멋지게 맞춰서 새로운 버전의 목차를 써주셨어요." (창비 문학 1팀 이해인 편집자 님) ㅎㅇ 노래 가사가 목차가 되었으면 추억이 소환돼서 나름대로 재밌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쉽지 않은 작업을 하셨네요. 에디터리 제목을 짓게 된 과정에 대한 질문도 드렸는데요. 마케팅부에서는 '은퇴'가 제목에 들어갈 경우 대형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다른 안을 고민해보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해요. 제목 후보 중에는 '시간의 마법소녀 변신'도 있었다고 합니다. ㅎㅇ 그렇죠. 변신은 스포가 아닐 수 있죠. (웃음) 에디터리 마법소녀가 변신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요. (웃음) 하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제목이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라는 데에 최종적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해요. 제목에 스포일러가 담겼다고 생각하실 독자 분들도 있겠지만, 마법소녀는 '도대체 왜 은퇴하는가?'가 호기심을 만들어주는 포인트인 것 같아요. ㅎㅇ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의 줄거리는 카드 빚을 갚지 못해 죽으려던 29세의 주인공이 돌연 마법소녀가 되는 이야기 입니다. 저는 이 소설이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어요. 1) 주인공이 마법소녀라고 선언을 당한다. 2) 마법소녀이긴 한데 그 마법 소녀는 아니라고 정정을 당한다. 3) 마법소녀는 은퇴한다. 두 번째가 좀 재미있죠. 처음에 주인공은 자신이 '시간의 마법소녀'인 줄로 알아요. 그래서 갑자기 시간을 통제해서 세상을 구해내야 하는 운명이 됩니다. 세상이 종말이 되는 속도를 늦추든, 과거의 잘못을 다시 시정할 수 있는 타이밍으로 돌아가든, 어떤 방법으로든요. 그런데, 이게 중간에 정정이 되버리는 거예요. 알고 보니 주인공이 마법소녀이긴 하지만 '시간의 마법소녀'는 아니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야기는 'OO의 마법소녀'라는 공란을 비워두는 상태로 접어듭니다. 결국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갈 때까지도, 주인공이 어떤 마법소녀인지 정확히 정의가 내려지지는 않아요. 다만, 그를 향해 "값을 치르는 마법 소녀"(p.184)라고 묘사하는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은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지만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되는 것인데요. 이게 바로 우리의 삶이죠. 에디터리 맞아요. 거저 얻어지는 건 없죠. 무언가를 꼭 잃죠. ㅎㅇ 그래서 끝까지 읽어보면 '아 이게 내 이야기구나'가 되어 버려요. 우리가 뭘 잃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고요. 주인공이 은퇴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요. 에디터리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건 주인공이 느끼는 사명감에 대한 구절이에요. "내가 중요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설렘과 어쩌면 이 일로 잘 먹고 잘살게 될 수도 있다는 계산적인 마음을 넘어, 처음으로 사명감 (그렇게 불러도 될까?) 비슷한 게 가슴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까짓것 해보자고요, 마법소녀 뭐 그거……" -<마법소녀 은퇴합니다>(p.70) ㅎㅇ 저는 '까짓것 해보자고요'가 이 소설에서 무척 중요한 태도인 것 같아요. '마법소녀'라는 소재를 택한 건, 작가가 마법소녀물을 좋아하는 유년기를 보냈고 여전히 즐겨보고 있는 덕일텐데요. 하지만, 이 소설에 구체적으로 언급 된 기후위기를 비롯해서 지금 종말을 향해가는 세상을 향한 절망감이 우리들에게 만연해있잖아요. 이 소설은 그래도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을 거는 거죠. 그게 다름 아닌 우리의 사명감이 되는 거고요. 그래서 부담스럽긴해도 까짓것 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또 재미있던 것이 작가의 말이었는데, 박서련 작가가 본인을 "후기 밀레니얼 세대의 맏이 격"(p.194)이라고 명명을 하고 있거든요. 요즘 밀레니얼 세대를 이야기할 때, 어떻게 출생년도 기준으로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가 한 세대로 묶일 수 있는가에 대한 반문이 터져 나오고 있잖아요. 관련해서, 얼마 전에 대학내일에서 전기 밀레니얼과 후기 밀레니얼을 구분 짓는 지표를 발표한 적이 있어요. 대학내일은 2008년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일 때 20세였던 사람, 즉, 89년생부터 95년생까지를 '후기 밀레니얼'로 정의하고 있고요. MZ세대가 아니고, 이렇게 전기인-후기인처럼 세밀하게 나뉘어지고나야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결국 점점 많아질 것 같아요. 많아져야 하고요. 뭉뚱그리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할 때, 독자도 더 공감하게 되니까요.